구역공과&쉴만한 물가
2018년 4월 넷째 주 구역공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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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은혜가 더 크다. -에스라 9: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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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배/ 순/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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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에스라 9:13) 한 주간 읽을 성경 말씀: 에스라 8-10장 |
환영/ [지난주 말씀 나눔]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른 적이 있는가?(예: 거짓말, 험담 등)? 찬송/ 309(409) 기도/ 구역원 중 말씀속으로/ 헌금찬송/ 310(410) 주기도문/ 다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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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지난 주 말씀 가운데 혹은 살면서 깨달은 것, 회개, 감사, 결단한 것들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 주일설교: 마가복음 14:32-42 “예수님의 두려움, 그리고 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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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해]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기에 앞서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평탄한 길을 간구한다. 왕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군인들의 호위 속에서 예루살렘 2차 귀환을 이끌 수 있었지만, 에스라는 그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긴다(8:22).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만 의지하기로 결단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는 성전을 건축한 후 실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개혁한다. 개혁의 내용은 정체성 확립과 율법 중심의 삶의 개혁이었다.
[말씀 깨닫기]
본문은 6절부터 이어지는 에스라의 기도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상황을 보고받는다. 1차 귀환한 공동체가 부정한 이방족속과의 결혼으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보고를 들은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뜯고, 주저앉아 탄식한다(9:3-5).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 에스라의 기도는 죄에 대한 회개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한 철저한 의지이다. 이 에스라의 기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깨달아 알 수 있다.
1.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너무도 쉽게 죄 가운데 빠질 수 있는 약한 존재들이다. 아담의 문제(죄)는 인류에게 주어진 난제와 고통이다. 우리는 가인의 후예가 되어버렸고, 죄의 문턱에 걸리는 인생이다. 위대한 청교도 신학자인 존 오웬은 깊은 바다일수록 더 강한 물결이 출렁이듯이, 인간의 심연에는 죄의 파도가 항상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옛 성인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아는 것에 있어 핵심은 우리가 죄를 짓는 일에 있어 속수무책(束手無策)인 것을 아는 것이다. 에스라가 2차포로 귀환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오래전 귀환한 백성들이 다시 예전에 조상들이 지었던 죄를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이 은혜로 포로에서 귀환시켜 주셨는데, 다시 이방인들과 결혼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반복적인 범죄로 인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자격이 없음을 고백한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10절) 에스라는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을 금지하는 신명기의 율법규정(신 7:1-4)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방 족속과의 통혼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11절). 이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죄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다. 에스라의 탄식처럼 이스라엘은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했다(14절). 다시 똑같은 죄를 지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일 때가 많다. 우리는 늘 똑같은 죄를 저지른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 거짓말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거짓말을 하고, 분노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분노하고,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돈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 불평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미워하고, 원망, 불평한다. 우리가 이렇게 연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자들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잘난 척 할 수도, 교만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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